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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南省,
元陽, 新街 입국심사를 가장 빠르게 마친 나는 찾을 짐이 없기에 어두침침한 공항을 나와 택시 타는 곳으로 갔다. 주위를 한 번 보니 어두운 밤이지만,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화려한 불빛이 남쪽 나라의 밤을 연상케 한다. 미터를 꺽고 달리는 길 양옆으로 따리 삼탑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불빛의 커다란 봉들이 인상적이다. 쿤밍 공항과 시내는 가까운 편이라더니 어느덧 벌써 내가 자려고 한 곳에 도착했다. (숙소 : Camellia Hotel ; 茶花賓館;www.kmcamelliahotel.com ; YouthHostel 겸용) 아침에 눈을 떠 쿤밍역 근처의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미리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昆明에서 元陽가는 직행 버스는 하루에 세 번 10:20, 19:30, 20:00이다. 10:20분 것을 타면 되겠지 했다. 밝지 않은 그리고 불편함이 없는 건물안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고, 난 어딘가 좀 한가롭고 좀 높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 같은곳으로 가서 "워쓰 와이궈런(我是外國人), 워야오취위엔양(我要去元陽)"라고 했다. - 미리 밝혀 두는 바 이지만, 중국어를 대학생때 아주 잠시 공부한 덕택에 지금도 아주 조금 기억할 뿐이다. - 그러더니, 19:30분 차가 있단다. 그렇다면 10:20분 것은? 매진이란다. 19:30분까지 기다릴 수 없고, 여기서 그곳까지 시간도 장장 7시간이 소요되니 다른 방법으로 해서. 즉, 昆明에서 차편이 많은 지엔슈이(建水) 까지 간 후 다시 建水에서 南沙 까지 가고 거기서 최종 목적지인 元陽 까지 가는거다.. * 참조 : 원양은 두 곳으로 불려지는데, 한 곳은 南沙이고 南沙에서 차로 다시 40분 가량 산을 올라가면 있는 동네가 진정한 원양, 新街 이다. * 참조 : 곤명 - 지엔슈이(220km, 3시간 30분 소요), 지엔슈이 - 난샤 (145km, 2시간 30분 소요) 10:00버스가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네와 비교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는 휴게소에서 약 10분을 보낸 것을 포함하면 약 3시간 30분 가량이 지난후 建水에 도착했고, 다시 버스를 갈아 타고 난샤로 향했다. (건수 버스 터미널에서 오른쪽에 있는 버스가 난샤행. 왼편은 이곳 저곳 경유해서 쿤밍가는 버스. 버스에 달려 있는 사다리를 타고 아주 큰 짐등은 위에 싣기도 한다. 물론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것은 Self같았다.) (지엔슈이(建水)의 상징은 朝陽門. 이곳 젼수이는 옛 스타일의 건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한다.) 建水는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라 하는데, 그냥 지나치는 건물 몇몇에서 그러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버스는 최대한 사람들을 모으고 부족한 자리 수를 채우기 위해 길다란 나무 의자를 정식 의자옆에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 짐도 올리고, 걸터 앉기도 하고 다용도 목적으로 보였다. 이곳은 쉽게 말하면 읍사무소 정도인지 장을 보고 마을로 돌아 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버스안 사람들. 사람들 얼굴에 특징은 별로 없다. 그저 흔들 흔들 거리는 버스에 자신의 몸을 추수리기에 바쁠뿐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버스안에서도 紅河라고 적힌 담배를 끊임없이 피우곤 했다. 이곳에도 운명이 계속 들어와서 인지 핸드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아주 큰 목소리로 통화도 한다.) (버스밖 풍경 유채화 가득 - 봄 속으로) 지엔슈이를 벗어나니 차창밖으로 보여지는 광경은 여기는 사시사철 상쾌하다는 운남성이고 중국에서도 아름다운 유채꽃이 핀다는 곳이 아닐까봐, 멋진 광경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유채꽃은 羅平 이라는 곳이 유명하다지만,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곳에도 노란색 유채꽃이 너무도 강렬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포장길 도로가 끝나더니 산 아래로 향하는 비포장길이 시작되었다. 덜커덩덜커덩을 계속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천천히 가고 있었다. 아래나 위로 보면 지나온 길과 지나가야 하는 길이 간혹 보이고, 왕복 2차선도 되지 않는 옆으로는 낭떠러지 길을 운전사는 그저 일상인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운전만 하고 간다. 유리창을 열어 반대편 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 눈이 가기 시작하고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 구나, 아, 여기도 오지기는 오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다.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약간 답답하기 시작했다. 이게 고산증인가? 난샤에 도착하니 기사가 바로 옆 작은 차(7인승)로 옮겨 타라고 한다. 이 차로 다시 저 산 위 마을로 약 40분을 달린다. 거의 다 와 간다는 느낌에 아까부터 느끼기 시작했던 고산증에 대한 공포는 기대감에 그 자리를 서서히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운전사가 올라가는 길을 바라다 보라는 뜻으로 가장 앞자리인 운전사 옆 좌석을 나에게 주었다. 작은 터널 비슷한 것을 지나니 옛날로 돌아간 듯 한 모습의 마을이 나오고 난 가방을 모두 챙기고 이곳에 한 발을 내딛었다. 진정한 대지의 예술, 진정한 대지의 조각의 세계로..1400여 년의 세월동안 각곡의 노력끝에 산비탈을 일궈 만들어낸 17만여 개의 계단식 논밭으로. (위엔양에 도착하여 5km를 걸어서 처음으로 만났던 梯田(티티엔), Long Shu Ba. 해질녘) (梯田은 우리네 삶의 하나 하나를 말하는 듯 해 보인다.)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良綠酒店에서 거처를 잡고, 하룻밤을 보낸후 아침 5시에 일어나 (시차로 인하면 6시에 일어나는 일상처럼) 대충 씻고 지난밤 대충 보아둔 곳으로 가서, 차량을 알아보기로 했다. 호객꾼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더니 나에게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하루의 일정과 값을 이야기 하더니 무조건 자기 차로 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한족 노 부부가 나에게 오더니 "싼거런~~"라고 하면서 이것은 안되겠다 다른 곳으로 나랑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가격 흥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약 5분 정도 흘렀는데, 저기에 서양사람 3명이 보이는 거다. 내가 가서 말했다. 어차피 그쪽도 오늘 하루 종일 티티엔 구경할 것 같으니깐. "산거런 이빠이우스위엔, 리우거런 쯔우스위엔" -> Three 150yuan, Six 50Yuan Per One Person" 내가 알아 들은 중국어를 이 서양인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흥쾌하지.. 2월 15일 日出부터 日落까지 함께 했던 7명. 1명: 운전사(이족,彛族) , 2명 : 중국인 노부부(漢族), 3명 : 네덜란드 가족, 1명 : 朴起德 중국인 할머니는 상당히 전형적인 한족으로 보였다. 목소리 크고 너무도 활동적이고, 중국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랑할 듯 한. 네덜란드 일행중 웬지 한 명은 아까부터 뭐 좀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곤명에서 2년째 공부중이란다. 그리고 부모님이 방문하여 운남성을 같이 여행중이란다. 왜 이곳에 왔냐고 물어 보니깐, 여기가 좋을 것 같아서 왔을뿐이라고 한다. 7명안에서 영어나 중국어나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뭐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면 그것이 이해하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겠는가 마는... 오늘의 코스는 일출이 유명한 듀오이슈(多依樹), 소수민족 마을, 셩춘(胜村), 빠다, 중간중간의 아름다운 계단식 논밭, 룡수바, 그리고 일몰이 유명한 멍핀(猛品)까지.. 0530~1500는 1부. 1500~1700까지는 각자 휴식. 그리고 1700~1900까지가 2부이다. ![]() (多依樹, Duo Yi Shu에서의 日出) ![]() (多依樹, Duo Yi Shu에서의 日出) (多依樹, Duo Yi Shu에서의 日出) ![]() (胜村, Sheng Cun 에서의 어지러움. 물 흐름의 아름다운 곡선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 하다.) ![]() (胜村에서의 起德) ![]() Bada에서의 그 웅장함 ![]() Bada에서의 그 웅장함 ![]() Long Shu Ba 에서 또 다른 색감 ![]() 멍핀(猛品)에서의 그 어지러움 ![]() (아침 일찍 뜌오이슈에서 아침 사진가 및 방문객을 위해 아침식사를 파는 이족 아이들) ![]() (이족 마을에서) ![]() (전통 양식의 담배 피는 것 같은 모습, 앞쪽에다가 실제 담배가 갖다 놓고 큰 통을 입에 댄다.) ![]() (고기집 앞에서) ![]() (하니족. 나무 바구니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 가는 것 같던데, 여기는 닭) ![]() (야채 파는 아주머니들) ![]() (빛이 들어가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가운데 있는 여인의 왼손에 있는 것은 생 닭) ![]() (뒤 모습이 특이했던 이족 아주머니들.) 19:30을 넘은 시간에 황홀함과 너무도 많은 티티엔의 흔적에서 오는 어지러움을 뒤로 하고 돌아온 숙소에서 젊은 주인 부부에게 "니쓰 이주마(이족인가요)?"라고 나도 모르게 물었는데, 부인은 환한 미소로 "뚜이(맞다)"라고 대답하고, 남자는 작은 미소와 함께 "워쓰 한주(한족)"라고 한다. 이 여인이 무슨 뜻인지 자신을 알아주는 기쁨인지 나에게 주방에서 가져온 작은 바나나 하나를 선물이라고 건넨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체로 이족들은 좀 성격들이 밝은 것 같다. 나쁘지 않네. 저녁을 먹고자 원래 조용한 마을이지만 일요일 저녁이라 더욱더 조용한 마을을 산책도 할 겸해서 작은 광장 근처로 갔다. 작은 골목길에서 조금 비치어지는 하늘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밤하늘이 보인다. 와.. 낮에도 너무도 진귀한 장면을 보았는데.. 이 저녁에도 내 생애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보다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는 말은 이때 사용하는 거구나 했다. 하늘의 반 이상, 3분의 2가량이 다 별이다. 어떻게 하나하나에다가 모두 이름을 명명하겠는가.. 별들이 나에게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별 하나하나 모두에게 말을 해 줄 수는 없지만, 난 장시간 고개를 젖히고 별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아름다운 말들을 풀어 보았다. 고마워. 하루가 피곤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다리가 좀 뻐근하다. 아주 따끈한 물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젊어서 고생이라는 말에 꾹 참고 여기까지 왔지 않는가, 찬물에 샤워도 못하겠냐. 조금 불편해도 참으면 되는 것이고. 샤워를 마치고 간밤에 사 둔 카스테라와 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check out을 하기 위해 Reception으로 가다 보이는 창가에 빛이 들어 오길래 가까이 가서 밖을 보았다. 아. 구름이 아래에 쫙 깔려 있는게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여기는 1,599m의 고지대가 아닌가. 여기는 雲南省인데, 난 담잠을 雲上에서 잔 것인데.. 신선놀음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을 오기전 집에서 어머니가 했던 말 "오래간만에 가출이구나"라고 하셨다. 근 8개월만의 여행인 것이다. 2009년 2월 16일 아침. 난 내생에서 또 다른 멋진 광경을 머리속에 담아 둔다. 이젠 다시 쿤밍으로 가는 길. 0920분에 쿤밍가는 직행버스가 있다고 해서 버스터미널로 갔으나, 이 또한 매진이란다. (이 말은 앞에 있던 홍콩사람이 중국어를 영어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고압적이었던 매표원과는 사뭇 다르게 친절히 나에게 알려주었다. ) 그럼 여기 올 때 반대로 오면 되는거지. 난샤-지엔슈이-쿤밍 이렇게 가면 된다. 신지에에서 난샤까지는 길가에서 손을 들어 차를 잡았다. 기사가 틀어주는 음악에는 박명수의 탈랄라도 흘러 나온다. 이곳의 자연 경관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이곳의 광경에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점점 고도가 내려 갈 수록 안도의 마음이 나지만 그 반대로 아쉬움이 더 큰 자리를 잡아 가는 듯 했다. 왜일까.. 냔사버스터미널에게 지엔슈이 가는 버스르르 다시 타고, 비포장 산길을 다시 달린다.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가게 되니 이젠 익숙함이란 것이 다 닿는다. 이런 오지에도 자연이라는 거대한 이름앞에 인간이 살아온 길이란 그저 믿기 어려울 정도며, 난 아주 작은 두려움앞에 너무도 웅크리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닌지.. 지엔슈이에 터미널에서 쿤밍행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배고픈 허기를 달래고자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평범한 중국인들이 먹는 것을 먹어 보기로 도전하고 어설픈 중국어로 도전. 그나마 먹기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그래도 입맛에 조금더 맞는 것을 대충 살피고 물어 보았다. "저거 하오츠마, 듀오샤오치엔(이거 맛있나요? 얼마죠?)?" (호객행위중인 回族. 建水 터미널에서. 앞에 창구가 있지만, 이들에게 표를 사면 좀 더 일찍 출발하는 표를 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1원하는 파인애플. 버스에서 먹기 좋게 비닐봉지 않에 넣어서 파는 것은 가늘 게 잘라 놓았다.) (옆에는 한국으로 치면 귤에 해당. 씹히는 씨가 몇 개씩 들어있다. 약 6~8개 정도가 1원.) (내가 과감하게 시도해 보았던 5원자리 麵) (한 번은 먹고 싶었으나,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음식인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쿤밍에 다시 도착. 비행기는 23:55분. 현재시각 17:35분. 날씨기 쾌청하기 그지없고, 온도는 약 29도인데 사람들은 옷을 많이 감았다. 쿤밍역으로 가서 사람구경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리로 저리로 떠나려는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삶에 대한 고단감, 기쁨 그리고 情에 대한 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주어진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듯한 모습에. (基諾族으로 보인다고 한족이 나중에 가르쳐 주었다. 쿤밍역에서) (버스 화물칸안에 차곡차곡 쌓여져있는 병아리 상자. 쿤밍 장거리 버스터미널에서) (보이차를 마시기 위한 기다림. 쿤밍역 근처 시장내 어느 보이차 파는 가게에서) 공항으로 가기전 남는 시간에 쿤밍 北京路를 걸어 다니며 특이한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 보기도 하고, 시장에 들어가 여러 특색있는 사물도 구경하고, 3마오를 내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재발견도 하고, 위엔양에서 찍었던 사진도 몇 장 인화하고, 발 마시지도 받고, 여러 보이차 가게를 드나들면서 차도 마시고 운남에서의 맛과 향기 등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었다. |